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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part 1.

by 빛결샘숲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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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6-17)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이름이 49번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육체를 가진 우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분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 중에 뛰어난 위인이나 성인이 아니고 그 어떤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좋은 말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니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스토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예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당시 천하를 지배했던 로마 황제의 왕족이나 아들로 오셨다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모든 것을 알고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그대로 함께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를 절대로 우리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우리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굶주린 5,000명을 먹이라고 할 때 그들은 제일 먼저 돈부터 계산합니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요 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5-7)

 

 그러나 예수님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NGO의 리더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5000명이 아니라 수백만이 넘는 사람이라도 한 번에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나 지났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유명한 의사라고 본 것이지 생명의 근원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의 수준이 아니고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를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 엄청난 풍랑이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예수를 깨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풍랑을 꾸짖기 전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먼저 지적하시고 풍랑을 꾸짖을 때 한 순식간에 바다는 잔잔해져 버립니다.

 

 이런 사실들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우리 역시 문제 앞에서 좌절하거나 힘들어질 때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불평하고 의심하고 원망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샬롬.

갑자기 주님이 지신 십자가 그 외로움이 다가와 작품화했습니다. 왕으로 외치던 자들, 함께 죽겠다던 제자들, 가장 힘들 때 어디 갔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회당에서 예수가 가르치는 모든 말씀에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 찬 주님의 모습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깜짝 놀란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실력자는 쉽게 풀어버립니다.  

 

 성경이란 하나님의 지혜가 농축된 책입니다. 그래서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성경은 최고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농축되어 있으니 세상의 책은 몇 번만 읽으면 다 알 수 있지만 성경은 평생을 읽어도 새로운 깨달음이 솟아납니다.

 

 우리는 예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에 접속할 수가 있습니다(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끊임없이 하루에 3번씩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세계 각국의 쟁쟁한 엘리트들과 경쟁해서 가장 뛰어난 자가 됩니다.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포기하거나 돌아가려고 하지만, 위로 날아오르는 3차원의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위로 날아오르는 3차원의 세계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힘들게 생겼다면 이것은 우리가 걱정해야 될 일이 아니라 먼저 그 힘든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하는 답을 찾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세는 앞에 놓인 홍해 바다와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의 군인들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이 건너고 갈라진 바닷길에서 애굽의 추적대를 수장시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면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능력을 가진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 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 속에 모든 지혜와 기적이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지니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흥분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힘들 때, 절망에 가까운 일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믿음의 순종을 보여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전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할 4차원의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샬롬.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7-11)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어부로서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지친 상태로 허탈해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 그물을 깊은데로 던지라고 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 오릅니다. 누구라도 자기의 전문 분야를 건드리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몇십 년 동안 고기를 잡는 자로서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예수님은 고기잡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목수 출신입니다. 그런데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존심을 버리고 주의 말씀이 순종했을 때 그의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기회가 되어 버립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당장 무릎을 꿇습니다. 기적은 자존심을 억누르고 그물을 던졌을 때 임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베드로는 넘어지고 자빠지고 자신의 실수와 단점이 노출되어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확실하게 믿고 달려갑니다.

 

 불가능 속에서도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하신 하나님은 내 모든 삶에 어려움이 깊어져도 말씀대로만 행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실아갑니다.

 

 예수님은 따지기 좋아하는 빌립 같은 제자에게는 성자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 버려라고 합니다.(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 14:11). 

 

 믿음은 결단입니다.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이해될 때까지 기다리라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100% 확신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르는 비행기 항공 역학 논리를 다 알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은 내 생각의 한계에 내가 스스로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분석해서 믿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대로 믿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베드로와 빌립처럼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발견하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되고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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